조약돌 이야기

Charles Van Riper 선생님(1)

씨앗 8: Charles Van Riper 선생님-1

 씨앗: Charles Van Riper 선생님(1)

 

 

1975년 12월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하였다. 그 당시에는 미국 원서를 구입하자면, 출판사로 그 책의 invoice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여 받은 후, 그 invoice를 가지고 외환은행에서 외환수표로 바꾸어서 항공편지로 보내었다. 항공편으로 책을 받으면 항공료가 책값보다 더 비싸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배편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하였었는데 이 과정에서 3~4개월이 걸렸다.
그 당시 대구동산병원에 미국평화봉사단원이 파견되어 있었다. 그 중 Miss Lynn은 언어치료사로, Miss Marry는 청능사로 봉사하고 있었고, 나는 이들과 친분이 있었다. 내가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하는 중에 참고할 저널 논문을 구하지 못해 어려워하고 있을 때, Miss Marry가 미국에서 언어치료를 전공하고 있는 자기 동생 Michelle이 기꺼이 도와줄 것이니 필요한 논문 리스트를 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읽고 싶은 논문 리스트를 주었더니, Miss Marry가 10일 만에 175편의 논문 복사본을 나에게 전해주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논문이 올 수 있는지 물었더니, 동생이 기쁜 마음으로 대학도서관에서 저널들을 찾아 복사한 뒤, 평화봉사단원들이 이용하는 미군용 항공편으로 보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나의 석사학위 논문에서도 감사를 표시하였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고마운 분이다.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하면서 Miss Lynn에게 Charles Van Riper의『Speech Correction: An introduction to Speech and Hearing Pathology』(5th)를 번역하고 싶다고 하였더니, Miss Lynn이 Dr. Van Riper에게 나를 추천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 분야의 한국 현실을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언어치료 분야를 개척하고 싶은 대학원 학생으로 선생님의 책을 번역출판할 수 있도록 판권을 달라고 편지를 써서 Lynn의 추천서와 동봉하여 보냈더니, 곧 답신이 왔다.
Van Riper 선생님은 첫 편지에서 “내가 1920년대 미국에서 이 분야를 개척할 때,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고, 참고하고 싶어도 참고할 책이 없었다. 그러나 Mr. Kwon은의 상황이 나보다는 좋다.”고 하였다. 이 격려의 말씀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975년 그 당시 영어로는 많은 책들이 나와 있었고, 미국에서는 238개 대학에 언어치료학과가 있었다. Van Riper 선생님이 “이 책을 처음에는 강의 수강생들에게 등사판으로 프린트해서 배부하던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보완해 나가는 사이 다른 대학의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유명한 교재출판사인 Prentice Hall에서도 알게 되어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 이 책이 현재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고 하였다. 이 책의 이런 발전과정을 말씀해 주신 것은 학과도 없고, 출판을 하더라도 책을 살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려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경험담이 나에게는 도전의 말씀이었다.
이러한 격려와 개척과정의 어려움, 출판까지의 경험담 등은 내가 한국에서 많은 세월을 참으면서 견뎌내는데 힘이 되었으며, 내가 초창기에 책들을 출판할 때 Charles Van Riper 선생님이 Roll Model이 되었다. 나는 한국의 Van Riper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선생님과는 이때부터 서거하시기까지 약 20년 동안 사귐이 있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의 학생들은 등사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를 것이다. 1975년 내가 석사학위 논문을 발표할 때 발표장에 오시는 교수님들과 청중들을 위한 발표용 논문자료도 등사판으로 만든 유인물이었고, 제출용 본 논문도 활판인쇄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청타로 쳐서 만드는 시대였다. 지금은 복사기도 흔하고, 인쇄기술도 좋을 뿐만 아니라 그 경비도 큰 부담이 없어서 그때 겪었던 선배들의 고초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전글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