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이야기

Charles Van Riper 선생님(2)

씨앗 9: Charles Van Riper 선생님-2

 씨앗: Charles Van Riper 선생님(2)

 

 

미국에서는 1926년에 아이오와대학교 대학원에서 언어치료학과가 처음으로 개설되었다. 이 때 언어치료 분야의 주축이 된 분들 중의 한 분이 Van Riper 선생님이었고, Van Riper 선생님은 여러 개척자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저술과 논문을 발표한 분이었다. 총 저서가 몇 권이나 되는지는 확실하게는 모르나, 그의 저서들은 미국 대학에서 주요 교재들로 많이 사용되었다. 언어치료학개론을 예를 들면 300개 이상의 대학 중 약 70%의 대학에서 이 분의 책이 교재로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선생님은 젊었을 때 6분 동안 말을 한마디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심한 말더듬인이었다고 하였다. 내가 1980년 직접 만나보았을 때에는 은퇴를 한 후였는데, 아직 말더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생님이 어떻게 세계적인 학자로서 성공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을 후학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내가 본 선생님을 소개할까 한다.
첫째, 선생님은 학부에서 국어(English)를 전공하셨고, 대학원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학박사이셨다. 국어에 대한 탄탄한 지식은 글을 쓸 수 있는 기초가 탄탄하게 되었고, 심리학은 학문을 하는 기초가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생님의 글은 난해하지 않고, 술술 이야기하듯이 내려가서 전문지식이라도 이해하기 쉽게 쓰여 졌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바탕에는 국어에 대한 기초가 탄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훌륭한 학자가 되려면 먼저 탄탄한 국어의 기초가 잘 되어 있어야 한다.
둘째는 미국은 유동사회인데, 선생님은 Western Michigan University에서 언어치료학과를 창립하고, 한 평생을 그 대학에서 마쳤다. 선생님의 명성이라면 미국 어느 유명대학에서도 모시고 싶어 했을 것이고, 본인이 가려고 했으면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교수들이 이 대학 저 대학으로 옮겨가면서 움직이는 것이 미국사회이며, 또 이러한 현상이 학문 교류가 이루어지게 하는 좋은 결과도 가져온다. 작은 규모의 대학에서 평생을 보낸다는 것은 흔치 않는 경우이다. 선생님이 서거하자 이 대학에서는 언어임상실을 Charles Van Riper‘s Speech and Hearing Clinic으로 명칭을 부여하고 기념하고 있다.
미국의 대학은 University of (Michigan), (Michigan) State University,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등의 주립대학들이 있는데, University of (주명)인 대학이 그 주의 가장 대표적인 대학이고, (주명) State University가 그 다음 규모이고, (방향 주명) University가 더 작은 규모의 대학이다. (방향 주명) University이라고 해도 대학 전체 학생수는 약 3만명 정도의 규모이다.
셋째는 선생님의 장례에 관한 것이다. 선생님이 서거하자 나에게도 부음과 함께 선생님이 나에게 남겼다는 말을 유족들이 전해주었다. 선생님이 생전에 가입한 ‘화장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회원이셨고, 선생님의 생전에 남기신 뜻에 따라 화장으로 장례할 것이기 때문에 별도의 장례예식이 없다고 전해왔다. 혹 고인을 위해 조의를 표하고 싶으면 WMU에 설립된 Charles Van Riper 기념장학회로 직접 보내달라고 하였다. 우리 가족은 선생님의 생전에 두 번이나 방문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선생님의 집은 그 당시 150년 된 Historical Structure(역사적 기념건물)로 지정된 곳이었고, 소유한 농장은 80에이커의 넓이였다. 선생님이 글을 구상하면서 산책하던 숲이며, 사색하면서 앉아 글을 쓰던 숲 속의 간이 책상이며, 함께 종을 치면서 즐거워했던 기억들이 난다. 미국인들도 묘역을 호화롭게 꾸며 놓은 공동묘역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넓은 소유의 대지에 무덤하나 만들 터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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