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이야기

특수교육과 입학

내가 봤는데 1- 특수교육과 입학

 

내가 봤는데 1: 특수교육과 입학 

 


   나는 대학을 진학하는 과정 중에 두 차례의 어려움을 겪었다. 3수를 하려고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게 되어 대학은 내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하였다.
   그러던 차에 조카가 태어나서 조카의 출생신고를 면사무소에 하러 들렀다. 우연히 면사무소에 비치된 신문을 보던 중에 한국사회사업대학 학생모집 광고를 접했고, 장학생을 30%나 뽑는다는 내용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재수 후 대학에 떨어져 실망 중에 있었는데, 장학생을 30%나 뽑는 광고는 나의 관심을 끌게 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에는 모든 대학 입시에 필수과목은 국어, 영어, 수학이었고, 선택과목은 사회 및/또는 과학이었다. 나는 의대를 지망하여서 사회과목 대신에 독일어를 선택하여 준비하였고, 과학과목으로는 화학을 준비하였었다. 그런데 한국사회사업대학에는 사회과목 중 독일어를 선택할 수 있는 학과는 없었고, 내가 준비한 선택과목중 화학을 선택할 수 있는 학과가 유일하게 특수교육과 과학전공이 있었다.
   그 당시는 예비고사 제도(지금의 수능고사 제도의 전신)가 처음으로 실시되어서, 국가가 대학입학시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예비고사에 합격한 학생수가 대학입학정원의 3(?)배 수로 많지 않아서 학생들이 서울 소재 대학들로 쏠리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방의 유명하지 않은 대학은 미달사태의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지방대학에서는 이런 분위기라서 학생 한명이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필기시험을 친 후에 학과장 면접을 하고, 그 후에 5명씩 그룹으로 학장(지금은 총장) 면접을 하는 절차가 있었다.
   5명의 학생이 한조가 되어 총장실로 들어가 앉았는데, 이태영총장님이 제일 먼저 나에게 “특수교육이 무엇이라고 알고 지망하였습니까?”라고 물으셨다. 나는 솔직히 장학생 30%에만 관심이 있어서 팜프렛도 읽지 않고 응시하였었다. 나는 “특수한 교육방법을 개발하여 교육하면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더니 총장님은 씩 웃으시며, 내 옆의 여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하셨다. 그 여학생은 “맹아, 농아, 정신박약아, 등의 장애인을 위한 교육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입학면접하는 자리에서 특수교육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전체 수석 4년간 전면 장학생으로 1970년 대구대학교의 전신인 한국사회사업대학 특수교육과에 입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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