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이야기

제2의 갈등과 선택

 

내가 봤는데: 제2의 갈등과 선택

2의 갈등과 선택
 
내가 대학 다닐 당시에는 전국에 특수학교가 몇 곳 되지 않았다. 대구대학교의 네개 부속학교와 서울 맹학교, 서울농학교가 있었고, 이방자여사가 설립한 수원자혜학교와 대구남양학교가 그 당시에 개교되었다. 따라서 특수교육과를 졸업한다고 해도 교사로서 갈 곳이 별로 없었다. 그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특수교육과에 사회전공과 과학전공이 부전공으로 개설되어 있었다. 사회전공은 일반 중등학교의 사회과목 교사로, 과학전공은 과학(화학)교사로 나가는 것이 관례였다. 우리 동기생들은 특수교사 자격증을 한 사람도 받지 않고, 모두 중등교사자격증을 받고 졸업하였고, 일반 중고등학교 교사로 나갔다.
시대 환경이 이렇다 보니, 우리의 전공이 특수교육이냐 화학이냐 하는 생각을 하게끔 되었다. 오히려 학생들은 부전공을 주전공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대학원 진학을 할 때, 어느 전공을 할 것인가 하는 또 한 번의 갈등을 가져왔다.
경북대학교에서 다년간 강사로 오셔서 가르쳐 주신 OOO교수님께서 화학을 전공할 생각이 있으면 교수님의 연구실에 와서 공부하라는 언질도 주셨고, 앞으로는 환경오염 분야가 연구영역으로 좋을 것이라고 까지 말씀하셨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니, 그 시대(1973년)에는 우리나라에서 환경오염이라는 말 자체도 부각되지 않을 때이니 앞을 보는 대단한 안목이었다고 생각된다. 사실, 특수교육과에 언어치료라는 전공도 없고 관련과목 자체도 개설되지 않는 현실이었다. 과연, 언제 문이 열릴지도 보이지 않는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최종적으로 박교수님께 ‘저는 이곳에서 계속 한 우물을 파겠습니다.’하고 경북대 대학원으로의 진학을 접었다.
지나고 나니, 나의 갈등과 선택의 길이 잘 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마 화학을 전공했다면, 교수는 좀 더 빨리 되거나, 환경관련 사업을 했으면 좀 더 부유한 형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그러나 교수가 되었다면, 화학분야의 기라성같은 선배 교수님들 틈 속에서 살아남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언어치료 분야는 전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였고, 모든 학술용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처음 번역하여 사용하게 되었고, 전공서적도 처음 출판하는 경우가 되었다. 개척자로서의 길은 힘들고 외로운 세월과의 싸움이었지만 그만큼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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