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이야기

시카코 국제공학에서 할머니와 첫 식사

 

내가 봤는데:유학 2-시카코 국제공학에서

내가 봤는데: 시카코 국제공학에서 할머니와 첫 식사
 
시카고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디트로이트공항으로 가는 행로였다. 시카고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데, 앞에 있는 할머니가 중국여권을 가지고 있으며, 말이 통하지 않아서, 중국인 근무자가 여러 명 할머니와 대화하려고 다녀갔다. 중국방언이 많기 때문에 통할 수 있는 중국인 근무자가 모두 다녀갔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서 통관이 지체되고 있었다. 바깥 저쪽 2층에서는 자녀들이 어머니를 알아보고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자녀들이 한국말을 하였다. 알고 보니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가정으로 서울에서 살았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내가 할머니가 하는 말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어서 다시 영어로 통역해주어서 세관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장애인들과의 의사소통 경험이 이런 데서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그 후 자녀들로부터 시카고에 올 기회가 되면 찾아달라는 감사의 편지를 받았다.
디트로이트공항에 도착해서 택시로 Eastern Michigan University에 금요일 오후에 도착하였다. 봄학기가 시작되지 않은 방학기간이고, 주말이고, 모두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걸어 다니는 사람을 만날 수 없어 물어 볼 수가 없었다. 타고 왔던 택시기사가 여러 곳에 연락하여 단기간 머물 수 있는 대학시설로 안내하여 주어서 첫 날 밤을 보내게 되었다.
피곤해서 저녁을 먹지 않고 잤는데, 다음 날인 토요일 새벽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아침 식사도 할 겸 6시경 숙소건물을 나왔다. 담장이 없으니, 대학과 시민들의 주택과의 경계가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식당이 있는 지도 모르고, 그저 저쪽으로 가보자 하고 한참을 가는데, 건물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는 중인데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물으니 자기도 식사를 하기 위해 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우리 앞을 성큼성큼 걷는 그를 보고, 우리를 위해 천사로 온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시간에 문을 여는 식당은 그 도시에서 그곳뿐이었고 우리가 잡고 왔던 방향도 바른 것이었다. 양식에는 문외한이라 식당에서 주문을 하려니 무슨 음식인지를 모르고, 메뉴에 Egg가 있고 Bread가 있어서 Egg & Bread를 시켰더니 바르게 시킨 결과가 되었다. 미국에서 첫 식사였다.
이렇게 먼 거리를 매번 식사하러 올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지나오면서 보아둔 슈퍼같은 상점 앞에서 문 열기를 기다리는데 한참 시간이 흘렀는데도 상점 문을 열지 않았다. 9시 30분경에 어떤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다시 문을 잠그고, 10시가 되어서야 상점 문을 열었다. 봉지 안에 든 물건은 무엇인지 또 우리 입에 맞는 것인지를 몰라서 사지 못하고, 볼 수 있는 것이 고구마이고 과일이었다. 고구마와 사과를 사가지고 숙소로 돌아와서, 가져간 전기밥솥에 고구마를 삶아 먹은 것이 우리의 손으로 지어먹은 미국에서의 첫 식사였다.
소개받은 앤아버한인교회 이정봉목사님한테 전화해서 내일 아침 교회에 가고 싶다고 하니, 9시에 우리가 묵는 건물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하였으나, 한국과 미국과의 시간차 때문에, 밤새도록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다가 깜박 잠이 들어 나가지 못하니 목사님께서 직접 방까지 오셔서 우리를 깨워서 교회에 가게 되었다. 그 날이 마침 교회에서 성가대 식사대접하는 날이어서 미국에서 한국 김치와 밥을 처음 잘 먹어보는 잔치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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