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이야기2

한국언어치료학회 창립30주년기념 인터뷰

 

1. 한국언어치료학회와 관련해서 간단한 자기소개해 주세요.

 

저는 한국언어치료학회를 창립하여 15년 동안 학회의 초창기 발전과 함께한 권도하교수입니다.

 

2. 어떤 계기로 한국언어치료학회를 창립하였나요?

 

1988년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육으로서의 언어치료학이 처음 시작되는 해였습니다. 가르칠 교수와 교재도 부족하다고 하기보다는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미국 대학에서 사용하는 교재를 번역하여 책으로 출판하기 전에 원고를 가지고 가르쳤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1회 학생이 3학년 때에 임상실습을 해야 하는데, 실습에 필요한 상품화된 자료는 전무한 상태였고, 담당 학생임상가 본인이 매 시간 필요한 자료들을 손수 만들어서 사용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3학년이 지나면, 곧 졸업해야 하는 데, 졸업할 학생에게는 자격증도 없고, 취업해서 일할 장소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급한 것이 졸업 전에 자격증이라도 만들어 주면, 취업은 그다음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자격증은 국가가 관리하지 않고, 학회(ASHA)가 관리하기 때문에 미국 모델을 따라서 학회에서 자격증을 주자는 생각으로 1회 학생이 3학년 때 학회를 창립하였고, 우리 학생들에게 자격증을 주기 위해 학회를 창립했나 하는 속 보이는 모양새를 벗어나기 위해 연수회를 통한 우리 이외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수회를 통해 필요한 인재양성을 병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당시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인구 10만당 언어치료사가 약 13.5명이었는데, 우리나라 인구 5,500만명에 대입하면, 당장 필요한 언어치료사의 수가 약 6천명이 필요하였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이 분야의 인재양성과 전문가에 대한 자격증과 일할 기관 등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생각도 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지나고 나니 우리 학회가 실시한 학술행사와 연수회를 통하여 우리나라의 언어치료학 발전에 개척자적인 큰 역할을 한 것이 되었고, 여러 대학에서 언어치료학과를 설립하도록 이끈 계기도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3. 언어치료학 분야에 정말 필요하고 또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사전편찬을 하셨는데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초창기에는 가르칠 한국어로 된 교재가 없어서 영어교재를 번역하여 사용하여야 하였는데, 번역에서 가장 부딪치는 문제가 영어용어를 한글 용어로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참고할 사전류인 콘사이스급 영한사전으로는 전문용어를 번역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의학, 언어학, 교육학, 심리학 분야의 용어들이 우리 분야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들 관련 분야의 사전들도 미미한 시기여서 많은 용어가 사전에 없고, 있다고 해도 통일된 용어없이 여러 용어가 혼재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이 만들어서 사용해야 할 용어들도 많았고, 지나고 나면 나 자신이 앞에서 어떤 용어로 사용하였지 하는 혼동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만나는 용어마다 정리 기록을 해야 했는데, 그것이 모이다 보니 사전이 된 것입니다. 사전편찬은 많이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정리하다 보니 사전이 된 것입니다.  

사전편찬 작업은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한 작업인데, 초창기에는 가르칠 교재를 만드는 일과 학회 및 연수회 등으로 사전편찬에 시간을 집중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7년 만에 오는 연구년도 첫 번째는 가지지 못하고, 두 번째 기회에 연구년을 가지고, 대학원생이었던 안종복과 이강현이 우리 집 연구실로 출근하여 1년간 집중정리한 결과 초판이 출간되었습니다. 2판과 3판도 10년 주기로 새용어와 뜻을 정리하여 출판되었는데, 이 일에는 해당 연도의 학생들이 크게 도와서 가능했습니다. 역사가 짧은 학문 분야에서 사전이 있는 것 자체가 뿌듯한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3판은 http://slpdic.com/(언어치료학사으로 인터넷 검색해도 됨)에서 무료로 검색하도록 하였고, 새로운 용어는 수시로 등재하는 시스템을 취하여, 새용어 발생과 사전 등재 사이의 시간차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4. 앞으로 학회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되기를 바라시나요?

 

학회는 기본적으로 학문발전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요즈음에는 교수들에게 연구와 교육 및 취업, 심지어 학생모집에까지 신경써야 하는 14인 역을 하여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인구의 변화가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민족은 어려울수록 더 강해지는 민족입니다. 그 저변에는 널리 이로운 삶을 추구하는 홍익인간이란 민족정신이 흐르고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멀티시대라고 합니다. 횡단보도를 걸으며, 핸드폰을 켜고 걸고 듣고, 문자 보내고 하는 몇 가지의 일을 한꺼번에 하는 모습은 이상한 장면이 아닙니다. 내가 자랄 시대에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던 시대였습니다. 역사는 발전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시대정신을 찾아내어서 해야 할 일을 찾아내어서 일하는 민족특성 때문에 발전의 방향을 약속받은 새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5. 앞으로 후학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내가 은퇴 후 나는 교수시절에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나? 학생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해 주면 좋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제자들이 권교수님은 언어생명을 가르친 교수님이었어라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강의를 처음 듣는 학생들에게 첫 강의의 주제는 언어생명이었습니다. (참고: <조약돌이야기>에서 '언어생명'에 관한 글이 여럿 있습니다)

언어치료사들은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 무기인 언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언어생명을 가지도록 돕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역할을 한 삶이 쌓이면 쌓은 복이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직업 분야입니다. 우리는 복을 받을 위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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