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이야기2

1. 언어치료학 30 년을 보내며

언어치료학 30 년을 보내며

    

 

1. 박사, 교수, 선생님

 

오래 전 일이다. 내가 석사 1학기차였을 1974 년일 때일 것이다. 경북대 의대 교수님과 대화를 하는 중에 요즘 학생들이 교수와 박사를 구분할 줄 몰라. 그래도 경북의대 학생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인재들이랄 수 있는데 말이지. 나에게 특강을 부탁하고, ‘OOO 박사 특강이라는 포스타를 붙여 놓았더라고. 그래서 대표자들을 불러서 교수와 박사를 구분할 줄 모르느냐고 나무랐다.고 하셨다. 나도 그 당시는 그 뜻을 구분하지 못하여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교수는 박사를 만들 수 있지만, 박사는 교수를 만들지 못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동일한 사람을 호칭하는 명칭에 따라 본인이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르고, 단어 하나하나마다 가지는 의미가 파고들수록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교수라는 명칭보다는 선생님이라는 명칭으로 나를 불러 주는 것이 좋겠다고 제자들에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제직 중에 3명의 학생의 부모를 불러 상담을 한 적이 있다. 한명은 입학하자 학보사의 수습기자가 되었다. 수업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나의 수강과목을 낙제 처리하였다. 이 학생의 다른 수강과목을 확인해 보니 1과목이 D였고, 나머지 과목은 모두 F였다. 그래서 너는 학사경고 감이니,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였으나, 차일피일 부모님을 모시고 오지 않고 나를 피하였다. 그래서 몇 번 말로 더 경고를 하니, 학생의 아버님이 오셨다. 학생의 아버님이 나의 연구실을 들어오면서 나도 교육자(중학교 선생님)인데 이런 일을 당하니 면목이 없습니다.”고 하셨다. 나는 학생들이 주소를 바꾸면 성적표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어서, 부모님들께서 이 사실을 알고 계신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또 이 학생이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자기 동기들과 졸업을 같은 시기에 하지 못하니 지금부터 매 학기마다 한 과목씩 보충해 나가면 동기생들과 같이 졸업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님과 학생, 교수가 같이 노력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에서 부모님을 불렀다.”고 하였다. 상담 후, 학생으로부터 앞으로 잘 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부모와 교수가 협력하여 학생을 잘 지도하기로 하였다. 그 후 이 학생은 무난히 학부과정을 잘 마치고, 동기생들과 같이 졸업하여 현장에서 열심히 잘 일하고 있다. 졸업 시에는 나를 찾아와서 동생에게 신장을 이식하여 준 훈훈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 일이 동료교수들에게 알려지게 되어 권교수가 뭐 초등학교 선생님이야. 대학교수가 부모님들까지 부르고 왜 그러느냐.”고 하였다. “나는 내 제자가 잘못되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느냐? 나는 교수이기 전에 선생님이야.”라고 한 적이 있었다 .  

 

우리 어머님은 92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병중에 계실 때 무심코 엄마라고 작은 신음으로 하는 말을 들었다. 92세의 어머니가 어머니를 찾는 모습 속에서 어머니는 영원한 어머니임을 느끼게 되었다. 먼 훗날 제자들의 기억 한 켠에 '이런 말을 하셨어'하는 선생님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으려는 바램은 지나친 욕심일까? 

 

2019. 10. 10.

 

* 다음 주제 <2. Artist/ArtisanU.S.A./USA >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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